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이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는 복수 전공으로 역사를 선택할 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 고대 이집트를 공부하면서 건축물과 문화에 완전히 빠져든 경험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든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언어로 소통했을까? 그리고 그 언어는 지금도 살아있을까?
언어가 언제 시작됐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인류가 처음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을 시작한 시점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어학자들이 사용하는 기준이 바로 문헌 기록(written record)입니다. 여기서 문헌 기록이란 해당 언어가 실제로 문자로 새겨지거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례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흔적이 기준이 되는 셈입니다.
이 기준 때문에 가끔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기록이 더 일찍 나왔다고 그 언어가 더 오래된 건 아니지 않냐"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기록 이전의 구전(口傳) 언어를 비교할 방법이 없는 이상, 지금으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제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도 비슷했습니다. 증거가 있어야 역사가 되고 증거가 없으면 신화나 전설로 남는다는 것, 언어의 세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고대 언어들 — 타밀어와 아람어
인류 역사에서 언어가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드문 일입니다. 타밀어(Tamil language)는 그 드문 사례 중 하나입니다. 기원전 300년경에 작성된 상감 문학(Sangam literature)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타밀어 문헌으로, 이 시기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습니다. 스리랑카, 싱가포르, 인도의 두 개 주에서 공용어로 사용되며 전 세계 약 7천만 명이 쓰고 있습니다. 약 2,300년의 역사를 지닌 언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모국어라는 사실이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약 3,000년 전 고대 시리아 지역에서 종교와 예배의 언어로 쓰이던 아람어는 아람 문자(Aramaic script)라는 고유한 문자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여기서 아람 문자란 이후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의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문자 체계를 말합니다. 즉, 오늘날 중동 지역의 두 주요 문자가 아람 문자를 조상으로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현재는 기독교, 유대교, 만다야 공동체 일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사용자 수가 극히 적어 배우기가 매우 어려운 언어에 속합니다.
상형문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 이집트어의 두 얼굴
제가 이집트 역사를 공부하면서 오랫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상형문자(hieroglyphs)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조금 달랐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용도에 따라 두 가지 문자 체계를 병행했습니다.
- 상형문자(hieroglyphs): 신전, 왕릉 등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용도
- 신관문자(hieratic script): 일상적인 행정 문서와 실용적인 기록 용도
여기서 신관문자란 상형문자를 간략하게 손으로 쓸 수 있도록 발전시킨 필기체 형태의 문자를 말합니다. 일종의 '빠른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걸 알았을 때 꽤 재미있었습니다. 공식 석상에서는 격식 있게, 일상에서는 편하게 쓰는 이중 체계가 수천 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점이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집트어의 완전한 문헌 기록은 기원전 2,6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원시 상형문자는 그보다 약 600년 더 이전에 등장했습니다. 약 4,700년의 역사를 지닌 셈입니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어를 현재 복원하거나 배우는 것은 극히 어렵습니다. 모음 발음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음이 없다면 자음은 남아 있다는 것인데, 모음이란 상대적으로 보편적이고 종류도 적은 편이니 일부 복원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언어학자들이 비교언어학적 방법으로 이집트어의 발음을 부분 복원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완전한 복원은 여전히 힘들어 보입니다. 가장 마지막 형태인 콥트 이집트어(Coptic Egyptian)는 일부 이집트 기독교 예배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 언어 — 수메르어
수메르어(Sumerian)는 현존하는 증거를 기준으로 인류 최초의 문자 언어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기원전 3,500년경에 제작된 키시 점토판(Kish Tablet)이 가장 오래된 수메르어 기록으로,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수메르어는 아카드어(Akkadian)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종교·과학·신성 문헌에서 서기 1세기경까지 사용이 이어졌습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가장 오래된 언어들의 발생지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 인더스강 유역 등과 겹친다는 점은 우연이 아닙니다. 인류 4대 문명 발생지로 꼽히는 지역들이 바로 이곳들입니다.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 문자가 생겨나고, 문자가 있어야 언어의 기록이 남는다는 당연한 논리지만, 막상 언어의 역사와 나란히 놓고 보니 더욱 실감이 났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들을 조사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어는 아직까지 어느 어족(語族)에 속하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어족이란 공통 조상 언어에서 분화된 언어들의 묶음을 말합니다. 터키어와 문법적 유사성이 있고, 일본어와는 어순이 비슷하다는 관찰이 있지만 동일한 어족으로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한국어는 기록 이전의 구전 언어 시절이 길었을 것이고,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고유한 방향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느 한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비슷한 형제 언어를 찾기 어려울 만큼 독자적인 길을 걸어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언어란 결국 그 언어를 쓴 사람들의 역사와 함께 숨 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천 년 전 점토판에 새겨진 수메르어 한 줄이 지금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의 시작점이라는 사실, 저는 그것이 소설보다 훨씬 더 극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역사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자신이 쓰는 언어의 기원부터 한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아직 답이 완전히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매력적인 탐구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과 문명을 이해하는 또 다른 길이 열립니다.
참고: https://www.globallanguageservices.co.uk/oldest-languages-in-the-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