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에서 벗어난 언어는 야만어인가?
언어학에는 오래된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분석하려는 기술주의(descriptivism) 그리고 언어에는 지켜야 할 올바른 규칙이 존재한다고 보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표현을 교정하려는 규범주의(prescriptivism)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던 시절 철저히 규범주의자의 입장에 서 있으려 했습니다. 학생들의 목표는 시험이었고, 시험은 정확성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수일치, 시제 일치, 관계대명사 용법 같은 규칙들을 반복해서 가르치며 “틀리지 않는 영어”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외국에 나와 실제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그 기준이 얼마나 제한적인 시각이었는지를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원어민 화자들은 “There’s people outside” 같은 표현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문법적으로는 주어와 동사의 수일치가 어긋난 문장이지만, 실제 구어에서는 오히려 “There are people”이 지나치게 딱딱하게 들린다고 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절대 틀리면 안 된다고 가르쳤던 규칙이 현실의 언어 속에서는 훨씬 유연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언어학에서는 이런 비표준 표현들을 야만어(barbarism)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ain’t나 y’all 같은 표현들이 대표적입니다. 규범주의자의 눈에는 언어를 망치는 요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기술주의자에게는 사람들이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데이터입니다.

올바르게 말하려다 더 틀리는 과잉교정
과잉교정(hypercorrection)이란 사람들이 문법적으로 올바르게 말하려고 지나치게 신경 쓴 나머지 오히려 원래는 맞았던 표현까지 어색하게 고쳐버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whom의 오용입니다. "문장을 전치사로 끝내면 안 된다"는 규칙을 배운 사람들이 "What did you do that for?"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For what reason did you do that?"으로 바꾸는 식입니다. 또는 who와 whom의 구분이 헷갈려서 주어 자리에도 whom을 써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Whom is calling?" 같은 문장이 그 예입니다. 정확하게 쓰려다가 더 틀린 표현이 되는 아이러니입니다.
과잉교정 현상이 생기는 주요 원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규칙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경우
- "틀리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과도한 교정 욕구
- 격식체와 구어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생기는 혼선
저 역시 가르치는 입장이었을 때 이 함정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규칙을 강조하다 보면 학생들이 규칙 자체에 집착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러운 말하기 감각이 오히려 무뎌질 수 있습니다. 언어 교육에서 정확성과 유창성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는 여전히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분명히 아는데 생각이 안 나는 혀끝 현상
혀끝 현상(Tip of the Tongue phenomenon)은 언어학에서 TOT 현상이라고도 불립니다. 여기서 TOT 현상이란 어떤 단어의 의미와 쓰임은 분명히 알고 있는데, 정작 그 단어 자체가 기억에서 빠져나가 버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누군가 그 단어를 말해주면 바로 "맞아, 그거야!"라고 알아들을 수 있는데, 스스로는 도저히 떠올리지 못하는 그 묘한 순간입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이 현상을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는 공백"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뇌가 분명히 단어를 요청하고 있는데, 기억을 끌어오는 과정 어딘가에서 그 단어가 슬쩍 빠져나가 버린다는 겁니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연구들에 따르면, TOT 현상은 노화나 피로 상태에서 더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제 경험상 이건 특히 두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상황에서 훨씬 심해집니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면 한국어로 전환하려는 순간 제 모국어인 한국어 단어가 갑자기 증발해 버리는 일이 생깁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건 한국 친구들과 식당에 갔을 때였습니다. 주문할 준비가 안 됐을 때 "Can I have a couple more minutes?"라는 표현이 먼저 떠올라서 그걸 직역해서 말했더니, 친구들이 "그거 완전 영어식 표현이다"라고 하는 겁니다. 한국식으로 상황에 맞는 올바른 표현을 떠올리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어로 말할 때 영어를 섞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정작 한국어 단어가 죽어도 생각나지 않는 상황이 생기니 고통스럽습니다.
언어를 배우고 가르치고 사용하다 보면 언어란 것이 고정된 규칙의 집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살아있는 체계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야만어라 불리는 표현이 다음 세대의 표준이 되기도 하고, 정확하게 말하려다 더 어색해지기도 하고, 분명히 아는 단어가 입 끝에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규범주의자의 잣대만으로 언어를 재단하기엔 언어는 너무나도 유연하고 인간적입니다. 언어에 관심이 생겼다면 주변에서 들리는 "틀린" 표현들을 틀렸다고 넘기지 말고 한 번쯤 왜 그런 말이 생겼는지 들여다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globallanguageservices.co.uk/linguistic-phenomen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