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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화자에게 어려운 언어 (아랍어, 중국어, FSI)

by jaru0418 2026. 5. 18.

솔직히 저는 언어를 배우는 게 꽤 쉬운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 때 교환학생 친구와 아랍어를 함께 공부하다가 그 자신감이 완전히 박살 났지만요. 영어권 화자들이 특히 어려워하는 언어들이 있는데, 제가 직접 그 언어들을 배워보면서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랍어,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낯섦

대학교 때 교환학생으로 온 아랍 친구와 언어 교환을 했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친구는 아랍어를 가르쳐주는 식이었는데, 첫날부터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아랍어는 우선 문자 체계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아랍 문자(Arabic script)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씁니다. 여기서 아랍 문자란 28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표기 체계를 말하는데, 각 글자가 단어 내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알파벳처럼 단순히 외운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처음에 교재를 펼쳤을 때 방향감각 자체가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어에 없는 발음들이 많았습니다. 후두를 쓰는 파열음이나 목 안쪽에서 나는 마찰음은 아무리 따라 해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아랍어"도 사실 지역마다 방언 차이가 크고, 공식적인 상황에서 사용하는 현대 표준 아랍어(MSA, Modern Standard Arabic)가 따로 존재합니다. 현대 표준 아랍어란 중동 전역의 공문서, 뉴스, 교육 현장에서 통용되는 표준화된 아랍어로, 각 나라의 구어체 방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학기 마지막에 아랍어로 자기소개 영상을 찍었는데, 그게 제 아랍어 실력의 정점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렸습니다. 영어권 화자뿐 아니라 원어민이 아닌 누구든 배우기 쉽지 않은 언어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중국어, 성조라는 낯선 개념

중학생 때는 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자도, 긴 암기량도 아니었습니다. 한국 학생에게 암기는 별로 낯선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저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성조(tone)였습니다. 성조란 같은 발음이라도 음의 높낮이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언어적 특징입니다. 중국어는 4개의 성조를 가지고 있어서 같은 음절이라도 네 가지 전혀 다른 단어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에는 이런 개념이 없습니다. 제가 직접 배워보니 귀 자체가 성조 차이를 인식하도록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처음에는 같은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반에 어릴 때 중국에서 살다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중국어를 저와 똑같이 새로 배우는 입장이었지만 성조 구분만은 제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잘했습니다. 어릴 때 자연스럽게 귀에 담긴 것이라 그런지 성인이 되어서 배우는 저와는 완전히 다른 출발선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어의 어려움은 성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한자(Chinese characters)는 알파벳처럼 소리와 글자가 대응하지 않고, 각 글자가 의미와 발음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즉, 각 단어마다 의미, 발음, 성조, 한자 형태를 모두 따로 외워야 합니다. 그럼에도 약 13억 명이 사용하는 언어인 만큼 시간 투자 대비 활용 가치는 상당히 높습니다.

FSI 기준으로 보는 언어 난이도, 그리고 희소성의 가치

미국 외교부 산하 외국어 교육 기관인 FSI(Foreign Service Institute)는 영어 원어민이 각 언어를 직업적 수준으로 구사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분석해왔습니다. FSI란 미국 국무부 소속 기관으로 외교관과 정부 관계자들의 언어 교육을 담당하며 수십 년간의 데이터를 축적해 온 곳입니다.

 

FSI 기준에 따르면 아랍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는 모두 영어 화자에게 가장 어려운 언어 카테고리에 속하며, 유창한 수준에 도달하는 데 약 2,200시간이 필요합니다. 반면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같은 로망스어군(Romance languages)은 약 600~750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로망스어군이란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 계통으로 어휘와 문법 구조가 영어와 많이 겹쳐 영어 화자에게 상대적으로 친숙합니다.

 

제가 시카고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 프랑스 친구와 나눈 대화가 기억납니다. 육식동물을 뜻하는 carnivore의 반대말을 물었더니 그 친구는 프랑스어로 초식동물을 어떻게 쓰는지 떠올리고 나서 자연스럽게 herbivore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두 단어의 어원이 같아서 프랑스어 어휘를 그대로 영어식으로 바꾸면 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일본어를 배울 때 한자를 바탕으로 한 어휘들을 배우기가 쉬웠던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였습니다. 언어 간 거리가 가까울수록 학습이 쉬워진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려운 언어를 굳이 배우는 이유는 그 희소성에 있습니다. 아래는 영어권 화자 기준 난이도와 사용자 수를 함께 고려했을 때 학습 가치가 높은 언어들입니다.

  • 아랍어: 약 4억 명 이상 사용, 중동 및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공용어
  • 중국어(만다린): 약 13억 명 사용, 세계 최대 무역국의 공식 언어
  • 일본어: 약 1억 2,800만 명 사용, 한국어 화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조
  • 한국어: 약 7,720만 명 사용, 한류 확산과 함께 국제적 수요 증가

배우기 어려운 언어일수록 그것을 구사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영어와 아랍어, 혹은 영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유창하게 쓸 수 있다면 그 경쟁력은 분명히 다릅니다.

 

제가 조금씩 배워본 언어들이 마침 영어권 화자들이 가장 어렵다고 꼽는 언어들과 겹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느끼는 어려움의 이유가 단순히 "낯설어서"가 아니라 언어학적 거리(linguistic distance)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직접 경험으로 이해하게 된 셈입니다. 어렵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면, 적어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이유는 생깁니다. 관심 있는 언어가 있다면 난이도에 겁먹기보다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먼저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는 것이 훨씬 건설적입니다.


참고: https://www.globallanguageservices.co.uk/hardest-languages-to-lea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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