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시대 사람들이 읽었던 영어가 지금 우리가 듣는 영어와 전혀 다른 소리였다면 어떨까요? 저는 MBTI N 성향답게 이런 상상을 꽤 자주 합니다. 그런데 이게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언어학자들이 실제로 연구하고 복원해 내는 분야라니 아주 흥미롭습니다.

비교언어학을 통한 언어의 과거 파헤치기
처음 비교언어학(Comparative Linguistics)이라는 분야를 접했을 때의 흥분되는 기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언어들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 비교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학사 교환학생 신분으로 대학원 강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저의 열정에 특별히 허가를 해주셔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돌아와서 비교언어학이란 서로 관련 있는 언어들을 체계적으로 비교해 공통 조상 언어의 모습을 추적하는 학문입니다. 쉽게 말해, 현재 살아있는 언어들을 단서 삼아 이미 사라진 언어를 역추적하는 일이죠.
언어는 하나의 뿌리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나무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는 모두 라틴어라는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딸 언어(daughter languages)입니다. 여기서 딸 언어란 하나의 모어(母語)에서 시간이 지나며 분화된 언어들을 가리킵니다. 이 딸 언어들이 각각 어떤 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비교하면, 원래 라틴어가 어떻게 발음되었는지를 거꾸로 계산해 낼 수 있습니다.
음운변화: 소리는 왜 변하고, 어떤 규칙으로 변하는가
언어학자들이 과거 발음을 복원할 때 핵심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바로 음운변화(Sound Change)의 규칙성입니다. 음운변화란 언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정 소리가 다른 소리로 규칙적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변화는 무작위가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따르기 때문에 예측이 가능합니다.
언어학자들이 자주 관찰하는 음운변화 패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말 무성음화(Final Devoicing): 단어 끝에서 유성음이 무성음으로 바뀌는 현상. 독일어와 러시아어에서 단어 끝의 'g'가 실제로는 'k'처럼 발음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 모음 간 유성음화(Intervocalic Voicing): 무성음이 두 모음 사이에 위치하면 유성음으로 바뀌는 현상. 라틴어의 't'가 스페인어로 넘어오면서 'ㄷ'에 가까운 'd'로 변한 것이 그 예입니다.
- 인접음 동화(Assimilation): 주변 소리의 영향을 받아 발음이 유사해지는 현상. 스페인어 'desde'에서 일부 화자가 's'를 'z'처럼 발음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규칙들을 알면 "A 언어에서 'g' 소리인데 B 언어에서는 'k'소리네"라는 관찰로부터 이것이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체계적인 변화의 흔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g가 f로 변하는 등 발음 위치가 전혀 다른 변화는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 언어학자들이 이례적인 변화로 따로 주목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언어가 얼마나 유기적인 시스템인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가 별생각 없이 발음하는 소리 하나하나가 수천 년의 역사적 흔적을 담고 있다는 게 경이로웠거든요.
오타와 메모가 알려주는 뜻밖의 힌트
언어학자들이 과거 발음을 추적하는 데 오타와 철자 실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역사언어학(Historical Linguistics) 분야에서는 이처럼 문헌 속에 남겨진 비표준 표기들을 당시의 실제 발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삼습니다. 역사언어학이란 언어의 역사적 변화와 발전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현대인도 'there', 'their', 'they're'를 자주 혼동하는데, 이것이 세 단어를 거의 같은 소리로 인식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과거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의 문서, 편지, 기록물에 남아있는 철자 실수들이 그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발음했는지를 역으로 알려주는 것입니다. 문어(文語, written language)와 구어(口語, spoken language)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오히려 이 실수들이 더 소중한 단서가 됩니다.
여기에 더해 초기 언어학자들이나 외국어 학습자들이 남긴 메모도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 소리는 저 언어의 저 단어와 비슷하다"는 식의 기록들이 당시 발음을 추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역사 언어 자료의 가치는 언어학계에서도 꾸준히 강조되어 왔으며, 언어 보존 및 복원 연구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출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 관련 자료).
이 대목에서 저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작가분의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들은 보통의 성대와 청각을 활용한 의사소통이 아닌 저마다 전혀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세상과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의사소통에 대한 관점이 넓어지는 느낌이었는데, 과거의 발음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는 그 시대 사람들만의 세계를 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입니다.
참고: https://blog.duolingo.com/how-languages-used-to-be-pronounc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