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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사 학습 (틀리는 이유, 언어별 차이, 학습 접근법)

by jaru0418 2026. 5. 29.

영어를 가르칠 때 학생들이 가장 많이 틀리는 게 뭔지 아십니까? 단어도, 문법도 아닌 전치사였습니다. 특히 "연도와 달은 in, 날짜는 on, 시간은 at"을 설명할 때마다 학생들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르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침과 오후는 in the morning, in the afternoon이면서 왜 저녁은 at night인지를 물어볼 때, 솔직히 저도 선뜻 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전치사는 단순히 외워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치사를 틀리는 이유, 암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 시절 전치사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수업을 한 달가량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전치사 수업을 한 달씩이나 해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들어보니 그게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때 배운 핵심은 단순했습니다. 전치사는 사물이 아니라 관계를 가리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어학에서 전치사는 기능어(function word)로 분류됩니다. 기능어란 명사나 동사처럼 독립적인 의미를 갖는 내용어(content word)와 달리 단어 사이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는 단어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street(거리)나 car(자동차)는 그림으로 그릴 수 있지만, at이나 by는 그릴 수가 없습니다. 문맥 없이는 의미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수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는 in the car와 on the bus의 차이였습니다. 둘 다 타는 것인데 왜 하나는 in이고 하나는 on일까요? 영어 화자들이 생각하기에 자동차는 공간이 좁아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공간, 즉 내부로 진입하는 개념입니다. 반면 버스는 커다란 판 위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들었을 때 그냥 외우던 규칙들이 갑자기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전치사를 외우는 게 아니라 영어 화자가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이해하는 순간,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언어학자들이 전치사 습득을 어렵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국어에 이미 형성된 공간 인식 체계, 즉 언어적 세계관이 새 언어의 전치사 학습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학습자가 틀리는 건 게으르거나 집중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뇌가 이미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정리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언어별 차이

제가 직접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배우면서 가장 당황했던 것도 전치사였습니다. 같은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들이니 영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치사를 나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틀렸습니다. 영어를 배울 때 영어식으로 재조작한 공간 인식을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위해 다시 한번 뒤집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혼란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in, on, at은 서로 다른 위치 관계를 나타냅니다.

  • in: 공간 내부를 나타냅니다. The keys are in the drawer처럼 물리적 내부뿐 아니라 He is in love처럼 감정 상태에도 씁니다.
  • on: 표면 접촉을 나타냅니다. The book is on the table이나 The show is on TV처럼 물리적 혹은 매체 위에 얹힌 상태를 표현합니다.
  • at: 특정 지점을 나타냅니다. We met at the park처럼 장소의 지점, 혹은 I woke up at midnight처럼 시간의 지점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스페인어의 en은 이 세 가지 의미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포괄합니다. 스페인어 화자들은 공간을 '내부냐 표면이냐 지점이냐'로 세밀하게 구분하기보다는 '기준점과 관련된 위치'라는 더 넓은 개념으로 인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조직하는 방식의 차이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전치사 자체가 아예 없는 언어도 있다는 점입니다. 터키어에는 격 어미(case suffix)라는 체계가 있습니다. 격 어미란 별도의 전치사 단어를 쓰는 대신 명사 끝에 어미를 붙여 공간 관계를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부엌 안에'는 mutfakta, '부엌으로부터'는 mutfaktan으로 표현합니다. 단어 하나가 위치 정보까지 통째로 담고 있는 셈입니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또 다른 방식을 씁니다. 두 언어 모두 후치사(postposition) 또는 조사(particle) 체계를 사용합니다. 후치사란 영어 전치사가 명사 앞에 오는 것과 달리 명사 뒤에 위치하는 문법 요소를 말합니다. 한국어의 '식탁 위에'는 식탁(명사) + 위(방향) + 에(위치 조사)가 결합된 구조입니다. 영어의 on이라는 단일 전치사가 한국어에서는 복합적인 요소들의 조합으로 표현됩니다. 

전치사 학습 접근법 

제 경험상 전치사 학습에서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모국어와의 1대1 대응 기대입니다. 영어의 to와 at이 하나로 합쳐지는 언어가 있고, 반대로 한국어의 조사 하나가 영어의 전치사 여러 개에 걸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을 암기 문제로 접근하면 결국 지칩니다.

 

처음부터 목표 언어 화자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것이 언어 교육학에서 말하는 의미 기반 접근법(meaning-based approach)의 핵심입니다. 의미 기반 접근법이란 규칙을 먼저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규칙 뒤에 있는 개념적 의미를 먼저 이해하고 규칙을 습득하는 방식입니다. 규칙보다 개념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언어 습득 연구에서는 맥락 없이 규칙만 반복 암기하는 방식보다 목표 언어의 개념 구조를 이해하고, 다양한 맥락에서 노출될수록 전치사 오류가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출처: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pplied Linguistics).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를 배울 때 처음부터 그 언어 화자들의 공간 인식 방식을 배웠더라면 지치기보다는 흥미를 가지고 배울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전치사 학습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규칙을 외우기 전에 그 전치사가 쓰이는 전형적인 예문을 다양하게 먼저 접해봅니다.
  • 모국어와 1대1 대응이 안 될 때 억지로 번역하려 하지 말고, 목표 언어의 예문 안에서 감을 잡습니다.
  • 같은 전치사가 물리적 공간과 추상적 상태 모두에 쓰이는 경우, 그 밑에 깔린 공통 개념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전치사는 언어에서 가장 작은 조각 중 하나이지만, 어쩌면 그 언어 화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수업을 들으면서 영어 전치사를 공부한 게 아니라 영어 화자의 시선을 잠깐 빌려 쓰는 경험을 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전치사 때문에 막힌다면, 외우려는 노력보다 그 언어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를 먼저 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blog.duolingo.com/prepositions-across-langu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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